정씨 할머니가 세상사는 법(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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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길순 | 등록일 | 13.11.09 | 조회수 | 207 |
지난달 3일 오후 4시30분 연세대 공학원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들어섰다. 길거리에서 파는 허름한 꽃무늬 셔츠에 검정 치마 차림.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뽀글이 파마'를 했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검버섯이 몇 개 보였다. 동네 마실 나온 60대 시골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교직원 한 사람이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느냐" 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뒤 할머니가 조그맣게 말했다. "돈을 좀 내러 왔는데…. 1년 전에도 한 번 와서 돈을 조금 내놓은 적이 있어요." 교직원은 장학금 기부를 담당하는 대학본부 대외협력처로 급히 연락했다. 엄태진(45) 대외협력처 부국장이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 4월, 1억원이 든 봉투를 남기고 총총히 사라진 바로 그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 할머니는 자신이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씨'라고만 했었다. 귀한 뜻을 어디에 쓰면 좋겠다는 기부 약정서도, 기부금을 건넸다는 영수증도 다 필요 없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할머니에게 엄 부국장은 "꼭 한 번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건넸었다. 정 할머니는 "기억해 줘서 고맙다" 며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은 첫 만남 때보다 핼쓱했다. 잔주름도 부쩍 늘어 있었다. "따뜻한 녹차 한잔하시죠." 엄 부국장이 사무실 한쪽 작은 방으로 할머니를 안내했다. "안부 인사 드리고 싶었지만 연락처가 없어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다 늙은 사람 안부는 물어 뭐해요." 정 할머니가 팔목에 끼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빳빳한 새 수표 몇 장이 나왔다. 1000만원짜리 2장, 500만원짜리 1장, 100만원짜리 5장. 모두 3000만원이었다. "이번에도 조금밖에 안 돼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 주세요. 외부에는 알리지 말고…."
찻잔을 앞에 두고 10분을 함께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거의 없었다. 왜 또 큰돈을 내놓게 됐는지, 연세대와의 인연을 묻는 엄 부국장에게 정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작년 연세대에 1억원을 기부할 때 할머니는 "그동안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서 받은 토지보상금"이라며 "자식 셋은 대학 공부는커녕 밥도 제때 못 먹였지만 연세대 학생들이 이 돈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좋겠다" 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이번에는 성함과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 고 간곡히 부탁하는 엄 부국장에게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로 집까지 모셔 드리겠다" 고 해도 정 할머니는 "괜찮다" 며 고개를 저었다. "버스정류장까지만이라도 배웅하겠다" 고 엄 부국장이 나서자 "바쁠 텐데 무슨 배웅" 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공학관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3000만원을 쾌척하고 돌아가는 정 할머니는 허름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파주행 버스에 오른 할머니는 "어여 들어가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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