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 편지 제77호(신당 정붕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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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제천제일고 | 등록일 | 16.03.04 | 조회수 | 133 |
<「청렴-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77호 >
신당(新當) 정붕(鄭鵬) 선생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이며, 가학을 계승하고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연산군 때 사간(司諫)이었던 정붕 선생은 연산군의 비위에 거슬려 영덕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러다가 연산군이 죽고 중종이 즉위하자 귀양살이가 풀려 다시 교리(정5품 관직)가 되었으나 중도에서 병을 핑계로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중종이 정붕의 인품을 높이 사 그를 관직에 등용하고자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의정 성희안의 주선으로 청송 부사에 임명되었다. 성희안은 정붕 선생과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죽마고우였던 것이다.
정붕 선생이 청송부사가 된 후, 성희안은 청송 땅에서 나는 잣과 꿀이 별미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어느 날 정붕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 곁들여서 잣과 꿀을 좀 구해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정붕 선생은 편지에 ‘잣은 높은 산봉우리에 있고, 꿀은 백성들의 벌통 속에 있으니 부사가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소이까’ 라고 적어 보냈다.
이 편지 답장을 접한 성희안은 부끄럽게 여겨 정중한 사과의 편지를 다시 보냈다. 이처럼 정붕 선생은 천성이 매우 청백해 의가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는 일화들이 전해질 정도로 현대사회 청렴한 공무원의 표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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