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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편지 제73호(남의 눈에 보이기 위한 일은 하지 않는다.)
작성자 제천제일고 등록일 15.10.01 조회수 147

 

 

<「청렴-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73호 >

 

 

남의 눈에 보이기 위한 일은 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석견의 자는 자건(子健), 호는 한벽재(寒碧齋) 유공(由恭)의 아들이며, 사림파 학자인 붕(鵬)의 작은아버지이다.

 

태어난 해는 확실하지 않으나, 성종 5년(1474) 3년마다 행되는 식년 문과에서 성적순으로 둘째 등급인 을과로 급제, 왕에게 간하여 잘못을 바로 잡는 간쟁(諫爭)의 일을 맡아보던 정언(正言), 사헌부의 청환직(淸宦職)으로 문과 급제자 중 강직한 선비들이 임명되었던 지평(持平) 등을 거쳐 1485년 정6품의 관직인 이조좌랑이 되었다.

 

사헌부지평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임금에게 역사와 경서를 가르쳤던 경연(經筵)의 자리에서 원나라의 역사인 원사(元史)를 강의하는 대신 경서(經書)를 강의할 것을 임금께 아뢰기도 하였다.

 

1489년에는 이조정랑으로『삼강행실(三綱行實)』의 내용을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하였고, 연산군 1년(1495)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병조의 참지·참의를 역임하였다.

 

2년 후 사간원의 으뜸 벼슬인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판에 올랐다. 조선 전기 성리학의 대가였던 김종직, 정여창(鄭汝昌, 1450~1504)등과 이해를 따지지 않고 도의(道義)로써 사귀고자 하는 도의교(道義交)를 맺어 성리학을 공부하고 토론하였으며, 성종 때 유도인(有道人)13인을 천거할 때 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1498년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생전에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며 지은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많은 사림파가 죽음을 당한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을 때,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을 간행하였던 정석견 역시 투옥되었으나 고령으로 파직에 그쳤다.

 

 

“산자관원이 될지언정 구사를 빌리지 않겠다.”

 

청빈하고 성품이 꼿꼿하였으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작은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청렴한 생활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러한 그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궁중의 문서를 관리하고 임금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는 홍문관에 있을 때의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관청에 고관의 행차를 수행하는 구사(丘史)라는 관노비들이 있어 관원들이 행차를 할 때면 이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구사가 없거나 모자라면 다른 관청에서 빌려서라도 데리고 다녔는데, 홍문관에는 이러한 구사(丘史)가 없고 노비 하나만 있어 홍문관의 관원들은 으레 다른 관청에서 구사를 빌려 거느리고 다녔다.

 

그러나 정4품의 벼슬인 응교(應敎)의 위치에 있었던 정석견은 구사를 따로 빌리지 않고, 자신의 말 앞에 종을 하나 두어 길을 인도하게 하고 말 뒤에 종 하나를 두어 자신을 따르도록 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석견을 두고 손가락질하며‘산자관원(山字官員)’이라 하였다.

 

세 사람의 늘어선 행렬이 앞뒤는 낮고 가운데는 높은 것이 꼭‘산(山)’자와 같다 하여 정석견의 초라한 행렬을 비웃으며 놀리는 말이었다. 동료들이 그의 행색이 볼품없음을 지적하며 그를 나무랐다.

 

“구사 하나쯤 빌리는 것이 무슨 의를 해치는 일이라고 그토록 위엄을 차리지 못하고 체통을 잃으면서 다니는가?”

 

그러자 정석견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하였다.

 

“남에게 구사를 빌리는 것은 눈앞의 일이요, 호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등 뒤의 일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남에게 사람을 리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니 차라리 산자관원이 될지언정 구사를 빌리는 것은 원치 않노라.”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자들은 부끄러워하였다.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에 맞는 좋은 외관을 갖춰 남들에게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기를 원한다.

 

비록 사람들이 그것을 예의라고 할지라도, 보기 좋게 겉을 꾸미고 지위에 맞는 좋은 외관을 갖추는 것이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례허식이라면 이러한 일에 구애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허례허식을 쫓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룩한 일의 성과와 일상의 태도로써 더 큰 위엄과 기품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 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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