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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편지 56호(거상 임상옥을 통해 보는 청렴한 세상)
작성자 신길순 등록일 14.04.28 조회수 190

 

<「Clean-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56호 >

 

거상 임상옥을 통해 보는 청렴한 세상

 

1779생인 임상옥은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하여 1796년(정조 20)부터 상업을 시작, 1810년(순조 10) 이조판서 박종경의 정치적 배경을 이용하여 한국 최초로 국경지대에서 인삼무역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실제로 70명의 회계 보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30대에 이미 거상이 된 그는 중국과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기게 되었다.

 

그는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심리, 오래 보관하기 좋다는 점을 이용해 인삼을 홍삼으로 만들어 중국에 판매하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를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단합을 해서 조선 인삼 불매운동을 펼쳤다. 이에 여러 조선의 상단들이 중국 상인들의 담합에 굴복하여 빨리 인삼을 팔아버리려고 헐값에 인삼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인삼을 모두 사들인 임상옥은 이 인삼을 헐값에 파느니 다 태워버리겠다고 불을 지폈다. 결국 청나라 상인들은 임상옥에게 손을 들고 1821년 이 불매운동을 스스로 깨게 되었고 결국 임상옥은 이를 통해 원가의 수십 배에 팔아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였다.

 

임상옥의 호는 '가포'이다. 가포 '채마밭에서 채소밭을 가꾸는 노인'이라는 뜻이다. 임상옥은 막대한 재화를 자신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빈민구제 활동을 하였다.다른 사람들의 빛을 탕감해 주고, 본인은 아껴 쓰면서 그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 공으로 1832년(순조 32) 역관의 신분에서 곽산군수(郭山郡守)가 되었다. 그 후에도 왕은 계속 그를 공직에 있게 하고 싶어 해서 1835년 귀성부사에 발탁되나 "임상옥 같은 비천한 상인을 귀성부사로 임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변사들의 논척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관직에 욕심내기 보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재산을 나눠주며,《가포집》《적중일기(寂中日記)》의 글이나 시를 쓰며 평생을 살았다. 결국 그는 마지막에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났다.

임상옥은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란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이다.

물과 같이 평등한 재물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비극을 맞을 것이며, 저울과 같이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파멸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 출처 : 국민권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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