쳥렴편지 38호(걸림돌과 디딤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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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길순 | 등록일 | 12.11.23 | 조회수 | 190 |
이번에 소개해 드릴 청렴 편지는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2011. 청렴한 세상 좋은 글쓰기 대회(일반부)」 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성원님의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걸림돌과 디딤돌
당신은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당신 앞에 커다란 돌이 보인다. 그 돌을 피하기 위해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돌에 걸려 넘어진다. 당신은 이 돌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림돌이라 부를 것이다. 우리들은 삶에 있어서 많은 걸림돌들에 직면하곤 한다. 그 중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꾸준히 함께하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부패라고 하는 걸림돌이다.
사회속에 뜨거운 감자로 군림했던 부패관련 보도들을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쏟아놓는걸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보도들을 대중들은 익명이 보장되는 곳은 물론이고 직장과 학교 등 사람이 모이는 많은 장소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림으로 공인들에 대한 시선 또한 점점 더 비판적이고 부정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 과정의 반복으로 인해 대중들은 부패라고 하면 보통 높은 공직자들이나 공인들의 비리들을 많이 접해서 흔히 공인들의 행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패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작은 개념이지만 ‘부정직하다’고 볼 수 있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자신에게나 사회적으로나 그렇게 걸림돌이 될 만한, 사소하게 볼 수도 있는 일들은 우리들이 의식하지 못할 만큼 산재 한다. 실제로 내가 경험했던 상반된 두 번의 경험이 있다. 하나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혹은 한번쯤 겪었던 일이였다. 어느 날 저녁 약속이 있어 집에서 멀지 않은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자주 다녔던 길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나는 전에 택시를 탈 때 나왔던 요금과는 상당히 달리 나오는 요금에 신경이 쓰였고 혹시 택시기사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까 하며 넌지시 돌려 물어보았지만 택시기사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충과 사회 물가와 같은 일들을 들먹이며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요금을 떠나서 더 이상 구차할 수 있는 변명을 듣기도 싫었고 언성을 높이기고 싫어 멋쩍게 웃으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택시에서 내렸었다.
다른 또 하나는 내가 20살이 되던 해의 스승의 날, 졸업한 중학교의 은사님을 찾아 갔다. 그 날 은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중 은사님이 작은 고민이 있다며 말문을 여셨다. 어느 학생의 부모가 학생을 통해 책을 선물하는 것처럼, 거액은 아니지만 적지 않을 만큼의 도서상품권을 책 사이에 넣어주었는데 어떻게 되돌려 줘야 학부모가 기분이 나쁘지 않고 학생 또는 부모가 그런 것을 주었다는 걸 모르게 할 수 있을까 라며 내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나는 도서상품권 정도는 괜찮지 않은지 말해 보았지만 은사님은 단호하게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금전적인 것은 물론 어떤 것도 쉽게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그 모습은 교직자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견해를 바꿔버릴 정도로 매우 인상 깊었다.
이 작은 두 경험담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택시요금에 대한 사례에서는 결국 요금을 낸 것은 나지만 실제 사회적인 개념에서 걸림돌에 걸린 사람은 택시기사라 생각한다. 누구나 청렴과 부패라고하면 보통 공직자들의 비리를 떠올려서 그에 따라 적용대상 또한 공인에 한정된다는 편견이 크다. 그리고 나선 정작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땐 마치 그때의 택시기사가 언젠가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때 정직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에서 그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비판적이되어 공인들을 비판할만큼 청렴결백한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들을 상기 하다보면 어디까지가 부패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또한 고민하게 된다.
1920년대 미국 여행 보험 회사 직원인 하버트 하인리히가 5,000건의 노동재해를 분석하다 한 법칙을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 하인리히 법칙이라 명하였는데 이 법칙이란 1건의 대형사고가 있기 전 29건의 소형사고가 있었고 그전에 사소한 징후 300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법칙대로 라면 사전에 사소한 징후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인데 마치 사회 속에 우리가 도덕관념수준에서 그치는 행위들을 별 신경 쓰지 않는 행위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아가 결국 공인들의 대형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연상 시킨다.
그와 부합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가 된 아노미(anomie)라는 단어를 민중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기준을 잃은 혼돈상태’라고 명한다. 만약 사회가 우리 개개인의 도덕기준 부재와 청렴은 높은 분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여 결국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공인들의 비리와 부패가 우리, 대중들의 탓은 아니지만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를 더욱 심화시켜 범죄, 투기, 뇌물 등 사회적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작은 단위로 가정의 불화까지도 일으키는 커다란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 소시민인 우리 개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인생이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황이 변화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가장 긴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변화, 즉 자기 자신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점엔 거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명언에서 나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우리는 2002년 월드컵때와 같은 단결된 시민의 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 행동은 일치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위의 철학자의 말처럼, 나의 두 번째 경험담에 나오는 중학교 은사님처럼, 우리는 스스로 가치관을 잘 정리하고 자신의 신념을 잘 조정할 때에야 서두의 이야기에 나왔던 걸림돌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바꾸게 되어 걸림돌을 디딤돌로 보게 될 것이고 딛고 올라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스스로 정직하지 못할 수 있는 기회를 거시적으로 보아 사회전반적 문화의 청렴을 향한 하나의 도약이라 생각할 때에 자신의 행동이 ‘나 하나 쯤이야’라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가지고 행함으로 조금씩이지만 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직자, 정치인, 종교지도자 등과 같은 이들이 앞서 본을 보이며 우리들을 이끌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모범을 보였던 많은 지도자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훌륭한 지도자라고 칭하며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의 지도자들이 적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 지도층에 우리들의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하나로 뭉쳐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입장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가치관을 바꿈으로서 공직사회뿐만이 아니라 대중의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이 된다면 부패한 자들에게 일벌백계가 가해질 때에 그들조차 불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지도자들과 공인들도 우리와 같은 소시민적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사회의 일원에 속할 뿐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단지 ‘정직하지 않다.’이라는 도덕관념에서 그칠 정도의 행동과 삶을 살았겠지만 권력과 돈의 힘에 의해 변질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자신들도 언론을 통해 공인들의 행태를 보았고 그로인해 자신이 올바른 사회를 이끌어 보겠다는 일념과 목적을 가지고 청렴한 공직자라는 꿈을 품고 공직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초심을 떠오릴 수 있게 전 국민이 하나가 되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때처럼 단결된 시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자, 우리앞에 돌이 놓여있다. 이제 당신은 이 돌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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