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조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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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길순 | 등록일 | 12.04.06 | 조회수 | 234 |
자린고비의 주인공 조륵은 실제 인물입니다.
조륵은 지금의 충북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 증삼마을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는 지독하게 인색해 주위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으나 말년에 평생 모은 재물을 이웃에게 골고루 나눠줘 임금으로부터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이상의 품계) 벼슬까지 받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사에 쓰고 난 조기를 천정에 매달아 반찬삼아 밥을 먹으면서 식구들이 어쩌다 두 번 이상 쳐다보면 "얘, 너무 짜다 물켤라"고 호통쳤다든지, 장독에 앉았다 날아간 쉬파리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깝다며 단양 장벽루까지 쫒아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또 무더운 여름철에 부채를 사다놓고 그 부채가 닳을까봐 벽에 부채를 매달아놓고 머리를 흔들었다는 '고금총서'에나 나옴직한 수없는 기행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지요,
일화중에 하나인 전라도에서 소문난 구두쇠가 조륵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사랑방에서 묵게 되었는데 몇 년을 내버려 두었던지 창구멍이 뚫어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와 전라도 구두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창호지 조각을 꺼내서 저녁밥을 먹을 때 남긴 밥풀 몇알을 붙여서 대강 창구멍을 가리고 잤습니다.
이튿날 전라도 구두쇠는 "조선생, 문에 발랐던 종이는 내것이니 가져 가렵니다" 라며 창호지를 뜯어 집을 나선 뒤 5리쯤 되서였는데, 조륵이 헐레벌떡 뛰어와 "종이에 붙은 밥풀은 우리 것이니 놓고 가야 한다" 며 칼로 밥풀 붙였던 자리를 긁어내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돌아갔으며, 전라도 구두쇠는 "과연..."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륵의 인생관은 회갑을 맞으면서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한 덕택에 음성고을에서 최고 갑부가 된 그는 회갑연 때 마을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음식을 베푼 뒤 거의 모든 재산을 가난에 허덕이는 농부들에게 나눠주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한양 조씨 족보에는 조륵이 가뭄으로 3년 동안 기근에 시달리던 영호남 1만여 가구에 구휼미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감화를 받은 경상 전라도 현감들은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잇따라 세웠다고 합니다.
조정에서도 그의 자비정신을 높이 평가해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고, 죽은 후 검소하게 장례를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으며, 자식에게는 아무런 재산을 남겨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충청북도교육청 감사담당관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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